광고디자이너에서 소목수·목공예가로
값비싼 취미활동보다 창작활동이 만족감 커
변화를 두려워 말고 틀에서 벗어나야

강경구 작가 ?워라벨타임스
강경구 작가 ©워라벨타임스

[워라벨타임스] 남양주시 수동 언덕배기에 자리한 강경구 씨(51세)의 작업장에는 목공기계와 집진기의 소음으로 가득하다. 자동대패나 레이저 마커(라벨 인쇄기), 각도절단기 등 육중한 장비들이 자리한 사이로 뽀얀 분진이 켜켜이 쌓여있다. 오늘 강 씨가 위치한 곳은 테이블쏘(톱) 앞이다. 최근 주문받은 사운드 어쿠스틱 루버(음향효과 극대화를 위해 벽에 설치하는 인테리어 목재)를 재단하기 위해서다. 소목수이자 목공예가인 강 씨를 만나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물었다.

주야가 없는 광고업계...충전을 찾아 미국행

광고대행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강 씨는 어느날부터 조금씩 지쳐갔다. 광고업계가 그렇듯 변덕스런 클라이언트(광고주) 때문에 시안은 리테이크(반려) 되기 일수였고, 심지어 금요일에 의뢰하면서 월요일까지 마무리해달라는 무리한 주문도 다반사였다. 휴일마저 반납한 채 꼼짝없이 그래픽 툴과 씨름하는 자신의 모습에 염증이 난 강 씨는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이미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였지만 머리를 먼저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낮이 없는 일상에 지친거죠.

충전 시간도 필요했고

식견도 넓히고 싶었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홀홀 단신 날아간 강 씨는 저명한 컴퓨터 그래픽(CG) 전문가 양성기관인 '아카데미 오브 아트 칼리지(AAC)'에 입학했다. 그렇게 2년여간의 미국 생활에서 비울 것을 비우고 채울 것을 채웠다고 판단한 강 씨는 귀국후 다시 광고업에 복귀했지만 알 수 없는 공허감과 갈증은 여전했다. 시스템 부속같은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자아를 들여다 볼 시간이 절실했다.

?강경구 씨는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강 씨의 남양주 작업실 풍경. ?워라벨타임스?
?강경구 씨는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강 씨의 남양주 작업실 풍경. ©워라벨타임스?

그러던 어느날 그윽한 나무향이 그를 사로잡았고 자연스럽게 배움터를 찾게 됐다. 집을 지을때 기둥이나 서까래 등을 다루는 사람이 대목수라면, 안에 들어가는 창호나 가구는 소목수의 몫이다. 무형문화재 심용식 선생이 운영하는 서울 북촌 천원산방에서 수학한 강 씨는 서울 도심에 있던 집마저 남양주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소목수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서울 아파트를 팔고 한적한 전원주택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고, 도심숲을 벗어나니 비로소 목수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엔 다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반대했지만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해 줬습니다."

코로나가 불러온 역설...공방은 닫았지만 가구 의뢰는 늘어

강 씨는 남양주에 안착해 소목수 기량을 닦는 중에도 일반인 대상의 공방 운영이나 강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며 남도 가르치는 행복에 만족감이 배가됐다. 그러던 어느날 불현듯 코로나19가 닥쳤다. 

"남양주 시내에 있던 공방도, 관공서와 연계해 진행하던 문화센터 강의도 모두 코로나19로 중단됐어요. 생계를 떠나 목공인들이 교류할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안타까웠죠. 알다시피 목공수업을 인터넷 강의로만 할 수 없잖아요."

상심했던 강 씨에게 어느날부터 'AV룸(음악감상실)'을 꾸며달라는 애호가들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집안에서 취미를 즐기는 '집콕'이 늘면서 외부활동 대신 집안 인테리어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 것이다. 강 씨 또한 음악을 좋아해 고객과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뤄졌고 이 작업을 통해 소목수라는 자부심의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최근 코로나19로 실내활동이 늘면서 인테리어 가구 수요가 부쩍 늘었다. 음악감상실 설치 목재를 재단 중인 강경구 씨. ?워라벨타임스?
최근 코로나19로 실내활동이 늘면서 인테리어 가구 수요가 부쩍 늘었다. 음악감상실 설치 목재를 재단 중인 강경구 씨. ©워라벨타임스?

"요새는 목공 동호인이 많이 늘었잖아요. 그 중에는 여차저차한 이유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요. 목수일은 다른 취미처럼 노닥거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집중도 필요하고요. 아차하는 순간 톱날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거든요. 입문반은 장비 다룰 때 주의사항부터 가르칩니다."

삶도 예술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강 씨는 작업장에 두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일손이 딸릴 때는 아르바이트로 임시직을 구하기도 한다. 목공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강 씨는 장갑을 벗고 흉터 가득한 손부터 보여준다.

"조그만 소품 하나, 주방에서 쓰는 도마 하나라도 허투루 만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돼요. 다치는 경우도 많고요. 소소한 취미로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면 목수일에 대한 자기만의 명확한 철학와 확신이 있어야 해요. 누구든 입문했을 때 꿈꾸던 모습이 단순한 가구 하청업자는 아닐겁니다."

가구 작업과 작품활동 병행

강 씨는 개인전을 3차례나 치른 '목공예가'이기도 하다. 작업실 한 켠에는 그가 제작한 파인 아트(순수 예술) 작품들이 소중히 진열돼 있다. 천주교 신자인 강 씨가 작업한 십자가 공예로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2018년 1월 명동성당 전시(1898명동 갤러리)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이 직접 방문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딕(직선) 형태의 엄숙한 십자가보다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십자가가 꼭 반듯할 필요는 없잖아요. 변화를 주고, 뭔가 다르게 해보고, 거기에 자신의 의식을 투영해 가치를 찾는 것, 값비싼 취미를 즐기는 것보다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자존감을 채워주는 일도 없어요."

?강경구 씨는 소목수이자 목공예가다. 십자가를 응용한 강경구 씨의 목공예 작품들. (사진=작가 제공)
?강경구 씨는 소목수이자 목공예가다. 십자가를 응용한 강경구 씨의 목공예 작품들. (사진=작가 제공)

반듯한 포장도로보다 휘파람 불며

오솔길을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소목수와 목공예가 중 강 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본캐'(본 캐릭터)와 '부캐'(부 캐릭터)를 따져 묻는 기자의 우문에 강 씨가 현답한다.

"남들이 가는 반듯한 포장도로를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휘파람 불면서 오솔길을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가는 거죠. 인생도 창작활동처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후 되기 전에 개인전을 3번 정도는 더 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가구 작업을 게을리 할 수는 없죠. 하나하나가 다 소목장에 오르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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