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끄는 판결] 성희롱 피해자 이름 가린 징계서류…"방어권 침해 아냐"

전직 수사관의 제기한 '해임 처분 취소' 소송 2심 판결 파기
대법원 "패해자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면 방어권 문제 없어"

정재근 기자 승인 2022.08.07 10:28 의견 0
성비위 징계 대상자의 의심 정황이 이미 구체적으로 특정돼 징계 대상자가 징계 사유나 피해자를 안다고 볼 수 있다면, 징계 관련 서류에서 피해자의 실명 등 인적사항이 지워져 있더라도 가해자의 방어권이 침해된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진 출처 대법원 홈페이지. ⓒ워라벨타임스

[워라벨타임스] 성희롱이나 추행 등 성비위 징계 대상자의 의심 정황이 이미 구체적으로 특정돼 징계 대상자가 징계 사유나 피해자를 안다고 볼 수 있다면, 징계 관련 서류에서 피해자의 실명 등 인적사항이 지워져 있더라도 가해자의 방어권이 침해된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전직 검찰 수사관 A씨의 해임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7월부터 10월까지 검찰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던 중 여성 사무원과 수사관 등을 상대로 성희롱, 우월적 지위·권한을 남용한 부당행위 등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 처분을 받았고, A씨는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 언행은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임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가 각 징계혐의 사실을 다투고 있음에도 처분 절차부터 행정 소송까지 피해자 등이 특정되지 않아 진술에 맞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며, A씨 방어권이 침해됐다는 취지에서다.

징계 처분부터 소송이 시작된 뒤까지 피해자가 누구인지 등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A씨로서는 피해자 진술을 반박할 기회가 사라져 방어권이 침해됐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검찰이 법원에 낸 징계 서류에는 피해자들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2심은 "이 사건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고, 제출된 증거 만으로 이 사건 징계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성비위행위에 관해서는 징계 대상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일시, 장소, 상대방, 행위 유형과 구체적 상황을 특정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징계 혐의사실이 특정돼 징계 대상자가 징계 사유의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피해자의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사항이 공개되지 않아도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인 지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특히 성희롱 피해자는 2차 피해 등의 우려가 있어 실명 등 구체적 인적사항 공개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보호와 징계 대상자의 방어권이 충돌하는 가운데 방어권 행사가 실질적으로 지장을 받았는지를 판단할 때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통상적인 경우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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