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소장 책임져야" 유서 남기고 70대 경비원 극단 선택
경비원 갑질 상담 1년새 2배이상 급증…과태료 부과는 0건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 경비원은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관리소장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서도 남겼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워라벨타임스

[워라벨타임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 경비원은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관리소장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유서도 남겼다.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10여년 간 경비원 일을 해온 이 경비원은 지난해 말 부임한 관리소장의 갑질로 힘들어했고, 일주일 전에는 경비반장에서 일반 경비노동자로 강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일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70대 청소노동자 김모씨가 소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자택에서 숨졌는데, 경비노동자는 유서에 "소장이 미화원 죽음의 책임도 져야 한다"고도 했다.

강남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갑질 가해자로 지목한 관리소장은 A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로부터 아파트 관리를 위탁받은 B업체 소속이고, 경비노동자는 B업체가 경비 업무를 위탁한 C경비업체 S1 소속이었다.

관리소장의 경비원에 대한 갑질은 같은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아 경비노동자는 관리소장을 신고할 수 없었다. 또 자살한 경비노동자는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고용불안 때문에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 5월 서울 우이동 아파트 경비노동자 최모씨가 입주민의 갑질로 사망한 이후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됐지만 실효성 없는 법은 있으나 마나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는 경비원들의 갑질 피해 상담 건수가 지난해 1000건을 넘어, 전년 대비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을 하는 아파트 입주자 등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2021년 10월 시행됐지만 1년간 과태료 부과건수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접수된 경비원들의 상담 건수는 1004건으로 전년(428건) 대비 2.3배로 증가했다. 이 중 징계나 해고, 인사 등에 관한 상담 건수는 159건으로 전체 상담건수 중 15.8%를 차지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성희롱·폭행·폭언' 관련 상담은 53건으로 15건이었던 전년보다 3.5배 늘어났다.

분야별 상담건수는 △근로시간·휴일휴직(221건) △임금체불(135건) △퇴직금(86건) △실업급여(65건)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59건) △산업재해(35건) △최저임금(15건) △4대보험(12건) △노조관련 상담(7건) △기타(157건) 등이다.

2021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경비원 갑질금지법 관련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실제 부과 건수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0건이다.

경비원 고용계약이 초단기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행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범위 명확화의 고용영향분석'에 따르면 경비노동자(27만명) 중 위탁관리 단지 비율이 80%를 넘고, 자치관리라 하더라도 경비·미화 업무를 용역회사에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아 간접고용 비율이 90%를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사 응답자 3150명 가운데 응답자의 94%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으로 일하고 있고, 계약기간도 1년 이하 단기 계약으로 극심한 고용 불안 속에서 일을 하다보니 해고, 임금 삭감, 직장 내 괴롭힘 등 직장갑질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초단기 근로계약과 관리회사에 경비회사까지 있는 다단계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입주자 대표 회의의 책임 강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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